세컨드라이프랩 69

퇴직연금을 직접 굴려보니 달라진 것들

지난 글에서 "계기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며 마지막까지 아껴뒀던 이야기를, 이제 풀어보려 합니다. 이직 자체도 큰 결심이었는데, 그 와중에 퇴직금을 받을 계좌까지 새로 알아봐야 했습니다. 그렇게 IRP 계좌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계좌를 만들 때는 그저 서류상의 절차로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 계좌로 퇴직금이 들어오고 나서야 그 돈의 존재를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숫자로만 어렴풋이 짐작하던 돈이 실제로 눈앞에 찍히니, 그제야 이게 내 돈이었구나 싶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얼마인지도 모른 채 어디엔가 잘 쌓여 있으려니 했던 돈이었습니다. 한동안은 그냥 뒀다계좌가 생겼다고 곧바로 뭔가를 한 건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뭘 하지 않은 채로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들어간 채로, 잔액..

퇴직연금, 그냥 둘까 vs. 맡길까 vs. 직접 할까

지난 글에서 DC형이라면 운용 방법을 세 갈래로 고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금처럼 그대로 두는 방식, 운용사가 만든 펀드에 맡기는 방식, ETF를 직접 사고파는 방식입니다. 이름만 나열하고 넘어갔는데,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뭐가 다른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제 실제로 뭐가 다른지, 그리고 나에게는 어떤 방식이 맞을지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이 선택은 DC형·IRP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먼저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DC형이나 IRP를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됩니다. DB형은 회사가 적립금 운용을 책임지는 구조라, 애초에 이 중 무엇을 고를지 근로자가 관여할 지점이 없습니다. 회사가 두 제도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면 개인 신청으로 DC형 전환도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선택 자체가 ..

DB형과 DC형, 뭐가 다르길래 결과가 달라질까

지난 글에서 내 퇴직연금이 DB형인지 DC형인지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그 글자가 정확히 뭘 뜻하는지는 여전히 모르는 채였습니다. 그냥 회사가 정해둔 분류겠거니 하고 넘겼는데, 알고 보니 이 두 글자는 이름 안에 답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나중에 받을 금액까지 바꿉니다. 무엇이 확정되는지가 다릅니다DB는 확정급여형, DC는 확정기여형입니다. 이름이 어렵게 들리지만, 여기서 갈리는 건 딱 하나입니다. 무엇이 미리 정해져 있느냐입니다. DB형은 나중에 받을 금액이 정해집니다. 퇴직할 때 얼마를 받게 될지 계산식이 미리 정해져 있고, 회사가 그 금액을 책임집니다. 회사가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굴리든, 심지어 운용 결과가 나빠도, 내가 받을 금액은 계산식대로 나옵니다. 부족한 부분은 회사가 채워 ..

그동안 내가 마신 커피는 얼마나 나를 위한 것이었을까

최근 커피를 마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마신 수많은 커피 중에, 온전히 저 혼자를 위해 마신 커피는 얼마나 됐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돌아볼수록 생각보다 적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동안 마신 커피, 대부분은 회사 안에 있었습니다돌이켜보면 제가 마신 커피의 대부분은 어떤 자리에 속해 있었습니다. 출근길에 들르는 카페, 미팅 전에 나누는 한 잔, 거래처를 만날 때 자연스럽게 시키는 커피, 동료와 잠깐 숨 돌리며 마시는 커피. 이런 커피는 저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회사와 동료와 관계라는 맥락 안에 있었습니다. 정작 아무도 없이, 오직 저를 위해서만 마신 커피가 얼마나 됐는지 세어보니 생각보다 적었습니다. 20대부터 40대까지, 제 삶의 많은 시간이 조직과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려운 구..

내 퇴직연금, 오늘 3분이면 확인됩니다

지난 글 끝에서 확인에 나서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 퇴직연금을 확인하려고 하니 뭐부터 눌러야 할지부터 막막했습니다. 회사 앱을 열어야 하는지, 어디 사이트에 가입해야 하는지 검색만 몇 번 하다가 창을 닫은 적도 있습니다. 이름도 낯선 사이트들이 계속 나오니 더 미루고 싶어졌습니다. 알고 보니 첫 단계는 질문 하나면 충분했고, 시간으로 치면 3분이 채 안 걸리는 일이었습니다. 나는 DB형일까, DC형일까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건 딱 하나, 내가 DB형인지 DC형인지입니다. 이걸 먼저 알아야 다음에 뭘 봐야 하는지가 완전히 갈립니다. 두 유형은 확인하는 방법도, 그다음에 할 수 있는 일도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순서를 건너뛰고 아무 사이트나 먼저 들어가면, 정작 봐야 할 화면을 못 찾고 헤매기 쉽..

퇴직연금, 회사가 알아서 해주는 줄 알았다

1년 중에 월급명세서를 제대로 들여다보는 날은 딱 이틀입니다. 연말정산 공제 금액이 나오는 날과, 인센티브가 찍히는 날입니다. 그 두 날은 평소와 눈에 띄게 다른 숫자 때문에 저절로 눈길이 갑니다. 그 외에는 통장에 돈이 들어왔는지만 확인하고 넘어갑니다. 명세서를 열어봐도 세금, 4대 보험, 각종 공제 항목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을 뿐, 눈에 제대로 들어오는 항목은 실수령액 하나뿐입니다. 퇴직연금도 그 나열된 항목 중 하나였습니다. 매달 어딘가로 쌓이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 돈이 지금 어떤 상태로 있는지는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입사할 때 분명 관련 서류에 서명했을 텐데, 무엇을 선택했는지조차 기억이 흐릿합니다.회사가 알아서 한다는 말, 절반만 맞다"회사가 알아서 해주는 돈"이라는 생각을 오..

낯선 자리일수록 커피부터 찾는 이유

돌이켜보면 낯선 자리에서 만날 장소를 정하는 일은 늘 비슷하게 흘러갔습니다. 선배를 만날 때는 선배가 먼저 카페를 이야기했고,후배를 만날 때는 제가 먼저 카페를 이야기했습니다. 누가 정하든 결론은 같았습니다. 낯선 자리에서는 늘 커피였습니다처음 만나는 사람, 업무 미팅, 상담, 거래처와의 자리. 이런 자리에서 어디서 볼지 고민한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카페였고, 이건 저만의 습관이라기보다 대부분이 자연스럽게 공유하는 방식에 가까웠습니다.왜 하필 커피였을까가장 큰 이유는 부담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식사 자리를 정하려면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 만나는 사이에서는 그걸 알 방법이 없습니다. 음식 취향이 뚜렷한 상대라면 식당을 잘못..

7월 한달, 이 정도로 흔들려보니 예전에 정리했던 기준이 다시 보였다

7월은 조용한 날이 거의 없었습니다. 사이드카와 서킷브레이커가 번갈아 발동됐고, 7월 28일에는 하루 만에 10%가 넘게 빠졌습니다. 다음 날에는 코스피 역사상 처음으로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걸렸습니다. 그렇게 무너지던 지수가 7월 마지막 날에는 하루 만에 17.91% 뛰어올랐습니다. 이걸로 끝인가 싶었지만 8월 3일 다시 5% 넘게 빠졌고, 이 글을 쓰는 8월 4일 오늘도 지수는 오르내리는 중입니다. 주식을 시작한 뒤로 이 정도 변동성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흔들려보니, 오히려 예전에 정리했던 기준이 다시 보였습니다. 7월부터 8월까지, 끝없이 흔들린 지수7월 초부터 사이드카는 반복해서 발동됐습니다. 7월 중순에는 사이드카나 서킷브레이커가 하나도 발동되지 않은 날을 찾기가 오히려 어..

코스피 하루 만에 17% 폭등한 이유

7월 한 달 동안 국내 증시는 크게 흔들렸습니다. 레버리지 ETF의 부작용, 중국 반도체 경쟁 같은 설명이 이어졌지만, 저는 분석 기사를 볼 때마다 그 정도 사안이 이만한 낙폭을 만들 수 있는지 잘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7월 마지막 날, 설명의 방향이 한 곳으로 좁혀졌습니다. 7월 마지막 날, 코스피에 무슨 일이 있었나7월 31일 코스피는 하루 만에 1001.89포인트, 17.91% 올라 6595.45로 마감했습니다. 상승률과 상승폭 모두 역대 최고 기록입니다. 삼성전자는 26.81%, SK하이닉스는 29.95% 올랐습니다. 수급은 더 극단적이었습니다. 외국인은 7조 원대를 순매수해 역대 최대 매수 기록을 세웠고, 같은 날 개인은 8조 원대를 순매도해 사상 최대 매도 기록을 남겼습니다. 같은 장면..

친해질수록 커피를 덜 권하게 되는 이유

"커피 드시겠어요?" 이 말은 유독 특정한 자리에서만 제 입에서 나왔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 업무 미팅, 격식이 필요한 자리. 그런 자리에서는 늘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문득 이상한 걸 깨달았습니다. 정작 친한 친구나 편한 동료, 오래된 지인을 만날 때는 이렇게 물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 "뭐 마실래?"라고 물었습니다. 카페에 가는 건 똑같은데, 묻는 방식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처음 만나거나 격식이 필요한 자리에서는 늘 "커피 드시겠어요?"였습니다돌이켜보면 이 표현을 쓴 자리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상대와의 거리가 아직 가깝지 않거나, 자리 자체에 어느 정도 격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자리에서는 마실 것 하나를 정하는 데도 상대가 고민하게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