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DC형이라면 운용 방법을 세 갈래로 고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금처럼 그대로 두는 방식, 운용사가 만든 펀드에 맡기는 방식, ETF를 직접 사고파는 방식입니다. 이름만 나열하고 넘어갔는데, 그것만으로는 여전히 뭐가 다른지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이제 실제로 뭐가 다른지, 그리고 나에게는 어떤 방식이 맞을지 들여다볼 차례입니다.
이 선택은 DC형·IRP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먼저 짚어야 할 게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DC형이나 IRP를 가진 사람에게만 해당됩니다. DB형은 회사가 적립금 운용을 책임지는 구조라, 애초에 이 중 무엇을 고를지 근로자가 관여할 지점이 없습니다. 회사가 두 제도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면 개인 신청으로 DC형 전환도 가능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선택 자체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DB형이라면 이 글은 참고만 하고 다음 글로 넘어가도 됩니다.
무엇이 나에게 맞을까
세 가지 중 어느 쪽이 좋은 방법인지부터 궁금하실 텐데, 사실 상품의 문제가 아닙니다. 관여하는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는지, 아니면 신경 쓰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인지의 문제입니다. 수익률을 확인하고 상품을 비교하는 일이 흥미로운 사람이 있고, 그 자체가 피곤하고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상한 게 아니라, 성향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지 않은 채, 처음 가입할 때 정해진 대로 그냥 흘러갑니다.
이 성향을 딱 잘라 확인할 방법이 있는 건 아닙니다. 게다가 이 답은 지금 이 순간의 성향일 뿐, 평생 고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지금은 신경 쓸 여유가 없어도, 계기가 생기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잘 모르겠다면, 셋 중 가장 부담 없어 보이는 것부터 시작해봐도 됩니다.
세가지 방식을 놓고 보면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방식 | 특징 | 장점 | 유의사항 |
| 원리금 보장형 |
정기예금 등 안전자산에 그대로 둠 | 원금 손실 없음, 신경 쓸 일 없음 | 물가 상승을 못 따라가 실질 자산은 줄어들 수 있음 |
| 펀드형 (TDF 포함) |
운용사가 짠 펀드에 편입, 자동 리밸런싱 | 직접 매매하지 않아도 알아서 굴러감 | 이중 보수 구조, 개인 위험 성향은 반영 안 됨 |
| ETF 직접매매형 |
국내 상장 ETF를 직접 매수·매도 | 원하는 자산배분 직접 구성 가능 | 위험자산 70% 한도, 사업자별 지원 여부 다름 |
원리금보장형은 정기예금이나 이율보증보험 같은 안전자산에 그대로 두는 방식입니다. 원금이 줄어들 일은 없지만, 물가가 오르는 만큼 실질 가치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DC형과 IRP를 합쳐 여전히 60% 안팎이 이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선택이 아니라 방치로 이 방식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만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고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 방식도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펀드형은 운용사가 짠 상품에 편입하는 방식입니다. 그중 TDF(생애주기펀드)는 은퇴 시점에 맞춰 위험자산과 안전자산의 비중을 알아서 조정해주는 상품이라,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나이가 젊을 때는 주식 비중을 높이고, 은퇴가 가까워질수록 안전자산 비중을 늘려가는 식입니다. 투자 경험이 없거나 바빠서 신경 쓸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특히 잘 맞습니다. TDF가 아니어도 운용사가 제시하는 다른 펀드 중에서 직접 고를 수도 있는데, 그 경우엔 TDF와 달리 비중을 자동으로 조정해주는 기능이 없습니다. 다만 펀드 안에 또 다른 펀드가 들어 있는 구조라, 보수가 이중으로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편리한 만큼 비용도 함께 따라옵니다.
ETF 직접매매형은 국내에 상장된 ETF를 내가 직접 사고파는 방식입니다. 개별 주식은 살 수 없고, ETF 단위로만 투자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방식이 가능한지는 회사가 계약한 퇴직연금사업자(은행·증권사)에 따라 다릅니다. 일부 사업자는 아직 ETF 매매 자체를 지원하지 않기도 해서, 사업자 앱에서 미리 확인해보는 게 좋습니다. 원하는 대로 자산을 구성할 수 있지만, 위험자산(주식형 ETF 등)은 전체 적립금의 70%를 넘길 수 없고, 나머지 30%는 채권형 ETF나 정기예금 같은 안전자산으로 채워야 합니다. 이런 규정을 알아야 하고, 계속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합니다. 이미 다른 계좌로 투자를 해본 경험이 있고, 스스로 판단하는 데 익숙한 사람에게 맞는 방식입니다. 매일 들여다볼 필요는 없지만, 최소 분기에 한 번 정도는 비중을 점검하는 게 좋습니다. 세 가지 중 가장 손이 많이 가지만, 그만큼 결과도 온전히 내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다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셋 중 무엇을 고르든, 그 판단은 온전히 내 성향에서 출발합니다. 가만히 두는 것도, 맡기는 것도, 직접 하는 것도 다 정답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그냥 두는 방식을 선택했다면 그게 방치가 아니라 선택이었는지는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이 갈림길에서 세 번째를 골랐습니다. 원래도 그런 사람이었던 건 아니고,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 뒤로 경제와 시장을 보는 눈이 달라졌고, 시장이 흔들릴 때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그 나름의 재미도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전부 풀어보겠습니다.
퇴직연금을 대하는 법, 지금까지 쓴 글들
- 퇴직연금, 회사가 알아서 해주는 줄 알았다
- 내 퇴직연금, 오늘 3분이면 확인됩니다
- DB형과 DC형, 뭐가 다르길래 결과가 달라질까
- 퇴직연금, 그냥 둘까 vs. 맡길까 vs. 직접 할까
- 퇴직연금을 직접 굴려보니 달라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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