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계기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시리즈를 시작하며 마지막까지 아껴뒀던 이야기를, 이제 풀어보려 합니다.
이직 자체도 큰 결심이었는데, 그 와중에 퇴직금을 받을 계좌까지 새로 알아봐야 했습니다. 그렇게 IRP 계좌를 처음 만들었습니다. 계좌를 만들 때는 그저 서류상의 절차로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그 계좌로 퇴직금이 들어오고 나서야 그 돈의 존재를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숫자로만 어렴풋이 짐작하던 돈이 실제로 눈앞에 찍히니, 그제야 이게 내 돈이었구나 싶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얼마인지도 모른 채 어디엔가 잘 쌓여 있으려니 했던 돈이었습니다.
한동안은 그냥 뒀다
계좌가 생겼다고 곧바로 뭔가를 한 건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뭘 하지 않은 채로 시간만 흘러갔습니다.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들어간 채로, 잔액을 들여다보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몇 달이 지나도록 로그인 한 번 하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출근길에 문득 생각나도, 어차피 나중에 봐도 되겠지 하고 넘겼습니다. 1편에서 말했던 명세서 속 항목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있는 건 알지만 굳이 열어보지 않는 돈이었습니다.
계기는 아내의 한마디였다
그러다 아내가 한마디를 했습니다. 특별한 날도 아니었고, 그냥 저녁을 먹다가 나온 이야기였습니다. 가만히 두면 그 돈은 무조건 가장 안정적인 상품에만 머물러 있게 되는데, 물가는 계속 오르니 그렇게 두면 사실상 자산이 줄어드는 셈이라고 했습니다. 자산을 늘리는 데 관심을 좀 가지라는 말도 함께였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신경 쓸 게 하나 더 느는 것 같아 오히려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계속 듣다 보니 정말 그런가 싶어 계좌를 열어보게 됐습니다. 사실 1편에서 벌이가 끊기면 이 돈이 가장 절실해진다고 썼던 부분도, 그때 아내가 해준 말이었습니다.
그 뒤로 달라진 것들
그 말을 듣고 나서 IRP 계좌로 코스피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직접 매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경제와 주식시장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전에는 눈여겨보지 않던 금리, 환율, 지수 같은 단어들이 이제는 눈에 들어옵니다. 아침에 지수를 한 번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고, 시장이 크게 움직이는 날에는 왜 그런지 이유를 찾아보게 됐습니다. 자산을 어떻게 형성해나갈지에 대한 관심도 함께 늘었습니다. 신경 쓰는 시간이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그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흔들릴 때마다 확인한 것
직접 운용을 시작한 뒤로 몇 년이 지났습니다. 그사이 시장은 몇 번이나 크게 흔들렸습니다. 무역전쟁, 팬데믹, 전쟁, 계엄, 그리고 올해 3월에는 하루 만에 10% 넘게 빠지는 날도 있었습니다. 최근 7~8월에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다만 시세창을 붙들고 있지는 않았고, 뉴스는 챙겨 보되 그때마다 팔거나 무리하게 더 사들이지는 않았습니다. 스트레스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 안에는 나름의 재미도 있었습니다.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지난 글에서 그냥 두는 것도, 맡기는 것도, 직접 하는 것도 다 정답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답은 지금 이 순간의 성향일 뿐, 평생 고정되는 게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원래 신경 쓰지 않던 제가 계기 하나로 바뀐 게, 그 말을 그대로 증명하는 사례였습니다. 지금까지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돌아보면 1편에서 던졌던 질문, 왜 이 돈에는 그렇게 무심했을까에 대한 답도 결국 여기 있었습니다. 몰라서 못 한 게 아니라, 계기가 없어서 안 했던 것뿐이었습니다. 이 시리즈를 쓰는 과정 자체가, 제 나름대로 다시 정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퇴직연금을 대하는 법, 여기까지 다섯 편으로 정리했습니다. 다음번엔 절세와 수령 전략을 주제로, 조금 더 실용적인 이야기를 써볼까 합니다.
퇴직연금을 대하는 법, 지금까지 쓴 글들
- 퇴직연금, 회사가 알아서 해주는 줄 알았다
- 내 퇴직연금, 오늘 3분이면 확인됩니다
- DB형과 DC형, 뭐가 다르길래 결과가 달라질까
- 퇴직연금, 그냥 둘까 vs. 맡길까 vs. 직접 할까
- 퇴직연금을 직접 굴려보니 달라진 것들 - 현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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