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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숫자에서 조금 멀어지니 다시 보이는 것들

JS:) 2026. 8. 25. 14:04

얼마 전, 열흘 가까이 이어졌던 무기력에서 벗어나려고 다시 러닝화를 신었던 이야기를 남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 그 리듬을 다시 이었습니다. 하루 만에 모든 게 괜찮아진 건 아니지만, 일단 다시 뛰었다는 사실 하나가 마음을 조금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오늘도 그 리듬을 이어가려고 새벽에 일어났는데,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쉬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1시간 좀 넘게 내리던 비가 그쳤습니다. 잠시 고민은 했지만 주저 없이 옷을 갈아입고 신발끈을 조여맸습니다.

 

거리는 출근하는 사람들과 차량으로 분주했습니다. 한강이 가까워질수록 그 분주함은 점점 잦아들었습니다. 한강에서 달리는 동안 들리는 건 제 숨소리, 운동화가 바닥에 닿는 소리, 새소리, 그리고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의 소리뿐이었습니다. 비가 온 뒤라 그런지 공기는 꽤 습했고, 2km쯤 지나자 몸은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숨은 조금 가빴지만 마음은 오히려 홀가분했습니다.

 

평소라면 달리는 내내 신경 썼을 페이스, 심박, 케이던스 같은 숫자들이 어제도 오늘도 유독 거추장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달리는 중간중간 손목을 확인하며 페이스가 괜찮은지 스스로 채점하는 그 느낌이 싫었습니다. 돌아보면 요즘의 저는 무언가를 관리받거나 평가받는 것 자체가 조금 버거운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계속 무언가를 재고 기록하는 시계가 유난히 무겁게 느껴진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회복이라는 것도 결국 스스로를 다그치고 점검하는 과정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러닝에서만큼은 그 점검을 잠시 내려놓고 싶었습니다.

 

요즘 스레드만 봐도 러닝 기록에 신경 쓰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완주 인증, 페이스 그래프, 이번 달 누적 거리 같은 게시물을 보면 다들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장을 확인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닙니다. 숫자가 조금씩 나아지는 걸 보는 재미는 분명히 있고, 그 재미로 꾸준히 뛰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제와 오늘 그 숫자들을 다 꺼두고, 그냥 몸이 가는 대로 편하게 달렸습니다. 페이스도, 심박수도, 케이던스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뛰고 나면 기록은 평소보다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달리는 동안의 느낌은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저도 러닝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숫자가 조금씩 나아지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재미였습니다. 페이스가 10초만 빨라져도, 거리가 500m만 늘어나도 그날 하루가 다 뿌듯했습니다. 뛰고 나서 기록 앱을 열어보는 게 러닝의 전부였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숫자들과 조금씩 거리를 두려 하고 있습니다. 확인하지 않으려 애쓰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덜 궁금해졌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예전엔 숫자를 보며 제 컨디션을 확인했다면, 요즘은 그냥 몸이 하는 말을 먼저 듣게 됩니다.

 

숫자가 주는 재미를 부정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 저에게 필요했던 것은 저를 관리하고 평가하는 감각이 아니라, 그냥 지금 이 순간에 머무는 감각이었습니다. 숫자를 보는 러닝이 저를 기록하고 관리하는 쪽이라면, 감각을 보는 러닝은 그냥 지금 여기에 있게 해주는 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땀이 흐르는 느낌, 습한 공기, 스쳐 지나가는 풍경, 마주치는 사람들 — 숫자를 보지 않으니 오히려 이런 것들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숫자를 보는 러닝과 감각을 보는 러닝을 나눠보려 합니다. 둘 다 러닝이 주는 재미이고,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마음의 회복이 더 필요한 지금 같은 시기에는, 감각을 보는 쪽을 먼저 두기로 했습니다.

물론 매번 이렇게 뛰지는 않을 겁니다. 다만 지금은 기록보다 리듬을 잃지 않는 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숫자와 거리를 두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요즘 러닝을 하는 분들을 보면, 저를 포함해서 지금보다 더 빨리, 더 멀리 달리고 싶어 하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혼자 뛸 때는 몰랐는데, 다른 사람들의 기록을 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페이스를 더 당기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합니다. 저에게도 있는 마음입니다. 기록이 조금씩 나아지는 걸 보면 그만큼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만 너무 서두르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속도, 시간, 거리 같은 숫자에 집착하는 순간 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무릎이 아팠던 적도, 종아리가 놀랐던 적도, 햄스트링이 당겼던 적도 있습니다. 돌아보면 대부분 숫자에 욕심을 내다가 다친 경우였습니다. 한번 다치면 회복될 때까지 러닝을 할 수 없고, 그 몇 주, 몇 달 동안은 몸보다 마음이 더 초조했습니다. 회복 기간이 길어질수록 다시 리듬을 잇는 것도, 예전 컨디션으로 돌아오는 것도 오래 걸렸습니다.

 

러닝은 정말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도 러닝을 하시는 분이 있다면, 다치지 않고 즐겁게, 오래오래 함께 이어갔으면 합니다. 저도 지금 그 방향으로 조금씩 맞춰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