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예전에 썼던 글 하나를 다시 열어봤습니다. 「무가치함은 사실이 아니라, 상실의 시기에 생기는 해석이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아준 문장이었고, 그때는 이 글 하나로 꽤 오래 버텼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같은 문장을 다시 읽는데도 그때처럼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문장은 그대로인데, 그 문장을 읽는 제 쪽이 그때와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 글을 쓰게 된 배경은 오른쪽 어깨와 팔 부상이었습니다. 다치고 나서 벌써 6개월이 지났고, 몸은 이제 거의 다 회복됐지만, 예전에 하던 일은 이 몸으로 다시 할 수 없게 됐습니다. 수입이 줄고 사람 만나는 일도 뜸해지면서, 그 자리를 대신해보려고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3개월 전, 그 상실감 한복판에서 저 문장을 찾아냈고, 그 문장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으켜 세웠던 마음이 3개월 만에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전 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은 그대로인데, 다음엔 무슨 일을 해야 할지는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뭘 할 수 있을지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없는 채로 시간만 흘렀습니다. 그 위에 애드센스는 계속 거절당하고 있었습니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보이지 않는 일이 겹치면서, 생활 리듬 전체가 조용히 무너졌습니다. 원래 주 4~5일은 꼭 뛰던 러닝도, 그 안에서 같이 멈췄습니다. 한 번 이겨냈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다시 흔들리는 걸 보면서, 그 자체가 당황스러웠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이유도 뚜렷하지 않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났습니다. 뭘 하고 싶은 마음도, 해야 할 일을 하는 힘도 없었습니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함께 바닥을 쳤습니다. 그렇게 거의 일주일이 지나서야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자각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다시 리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마음먹었는데도, 실제로 몸을 움직이기까지 사흘이 더 걸렸습니다. 그 사흘 동안 러닝을 나가지 않은 날마다, 왜 안 나갔는지 스스로를 탓했습니다. 그런데 자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탓하는 동시에 안 나간 이유와 변명부터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명을 찾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또 한 번 자책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마음 안에서는 자책하고, 변명을 찾고, 그 변명 때문에 다시 자책하는 자리를 계속 맴돌고 있었습니다.
이 흐름을 지나고 나서, 이렇게 다시 글로 정리해보니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자책은 동력이 아니라 마찰이었습니다. 안 움직인 것에 대해 자책할수록, 다음 행동은 오히려 한 걸음씩 더 늦춰졌습니다. 그러니 이번에 정말 달라져야 할 것은 의지가 아니라, 이 자책의 고리를 알아채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확신을 기다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예전 글을 다시 읽어도 그때처럼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이 상태가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전의 나로 돌아가려면 그때 하던 것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그냥 러닝화를 신고 나갔습니다. 열흘 만에 그 리듬을 다시 이었습니다. 뛰고 돌아오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여기서 알게 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아는 것과 회복되는 것은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무가치함이 해석일 뿐이라는 답은 3개월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맞습니다. 하지만 한 번 알았다고 다음번에 저절로 편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오늘 뛰고 온 것으로 그동안의 우울감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불확실하고 불안한 생각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다만 이 마음은 이번에 새로 생긴 게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평소엔 마음 한쪽 구석에 있다가, 어떤 계기인지 모르게 한 번씩 튀어나와 저를 흔들어놓을 뿐입니다. 지금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이 마음을 완전히 없애는 게 아니라, 다시 구석 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그 방향으로 조금씩 움직이고 있고, 평소에 가까운 상태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확신이 없어도 내일, 모레, 그다음 날까지 이 리듬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예전 글에서는 무가치함이 해석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회복이었습니다. 지금은 다르게 씁니다. 회복은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확신 없이도 다시 감당할 수 있는 자리로 돌아오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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