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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시간을 사는 음료일까: 20대의 커피, 지금의 커피

JS:) 2026. 7. 29. 16:50

지금 이 글을 쓰는 제 옆에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 놓여 있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언제부터 이랬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문득 이 습관이 언제 시작됐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커피는 원래 잠을 쫓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시작은 고등학생 때였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시험공부를 하느라 잠을 쫓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커피는 맛도 분위기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졸음을 이기기 위한 각성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미팅과 소개팅, 그리고 시간을 때우기 위한 커피

1990년대 중반, 대학생이 되면서 커피를 마시는 이유가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잠을 쫓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팅이나 소개팅 같은 자리에서, 혹은 딱히 할 일이 없어 시간을 때우기 위해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 시절 카페는 지금과 많이 달랐습니다. 완전한 다방도 아니고 지금 같은 프랜차이즈 카페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모습이었습니다. 메뉴판에는 블루마운틴이니 헤이즐넛이니 하는 이름들이 적혀 있었는데, 사실 그게 원두의 산지나 향을 나타내는 이름이라는 것도 모르고 그냥 마셨습니다. 여름이면 커피보다는 우산 장식이 꽂힌 파르페 같은 아이스크림 메뉴를 더 자주 찾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스타벅스도 아직 한국에 들어오기 전이었습니다. 남자들끼리 모이면 커피보다는 당구장이나 술집이 먼저였고, 그 당구장마저 몇 년 지나지 않아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등장한 PC방에 밀려 하나둘 자취를 감췄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저에게도, 사회 전체로 봐도 커피가 아직 삶의 중심에 있지는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20대, 오히려 커피와 멀어진 시기도 있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에는 토익 점수와 각종 자격증이 필요해지면서, 커피를 다시 각성제로 정말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밤늦게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으려면 커피만한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취업을 하고 나서는 오히려 커피에 대한 감흥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신입사원으로 조직과 선후배 문화에 적응해야 했던 그 시기, 제 곁에 있던 건 커피가 아니라 술이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다니던 회사는 주류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어서, 술에 대해 유난히 관대한 문화였습니다. 신제품이 나오면 식당이나 술집에서 마음껏 마셔볼 수 있도록 별도 비용까지 지원해줄 정도였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평생 마실 술의 70퍼센트는 그때 다 마신 것 같습니다.


30대, 커피가 취향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30대가 되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전엔 믹스커피의 달달한 맛이 익숙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단맛보다 커피 본연의 맛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쌉쌀한 맛, 고소한 맛, 산미가 도는 맛, 씁쓸하면서도 묵직한 바디감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여러 원두를 사서 그 맛의 차이를 비교했고, 추출 기구도 하나둘 늘려가며 같은 원두라도 다른 방식으로 내려 마셨습니다. 예전엔 이름도 모른 채 마셨던 커피를, 이제는 산지와 로스팅 정도까지 신경 쓰며 마시게 됐습니다.

 

사실 왜 하필 이 시기부터 이런 맛을 좋아하게 됐는지는 지금 생각해봐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잠을 쫓아야 했고, 취업을 준비할 때는 토익 점수와 자격증이 필요했고, 신입사원 때는 조직 문화에 적응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런 이유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그 맛이 좋아졌을 뿐입니다.

 

어느새 커피는 하나의 의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아침에 일을 시작하기 전엔 꼭 커피 한 잔을 마셔야 했고, 외부 손님을 만나거나 미팅이 있을 때도 늘 커피와 함께했습니다. 혼자만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거나 조용히 있고 싶을 때도, 제 곁에는 항상 커피가 있었습니다.

 

처음엔 필요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필요와 상관없이 그냥 그 시간마다 커피가 있어야 하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습관을 넘어, 하나의 의식에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마무리

돌아보면 커피는 늘 같은 음료였지만, 그 안에 담긴 이유는 계속 달라져 왔습니다. 잠을 쫓기 위한 각성제였다가, 사람을 만나기 위한 핑계였다가, 시간을 때우기 위한 도구였다가, 한동안은 아예 그 자리를 술이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뚜렷한 이유도 없이 맛 자체를 즐기는 취향이 됐고, 지금은 하루의 특정 순간마다 당연히 곁에 있어야 하는 의식이 됐습니다.

 

필요해서 시작한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고, 습관은 다시 의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를 하나씩 짚어보니, 결국 보이는 것은 커피가 아니라 그 시절마다의 제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옆에 놓인 이 커피 한 잔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이유로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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