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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가치함은 사실이 아니라, 상실의 시기에 생기는 해석이다

JS:) 2026. 5. 29. 11:26

최근 한 드라마 제목을 보다가 마음이 멈추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드라마를 본 것도, 줄거리를 아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목 하나가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처음엔 그냥 제목이 세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습니다. 그 문장이 마음을 건드린 이유는, 지금 내가 정말로 그 싸움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블로그를 쓰고, 색인을 확인하고, 애드센스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 안쪽에는 더 깊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나는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인가.

 

오른쪽 어깨 부상으로 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면서, 수입이 줄고 외출과 사람을 만나는 일도 자연스럽게 뜸해졌습니다. 운동도 쉬게 됐는데, 그나마 마음을 붙잡아주던 행동 중 하나가 멈추니 마음이 더 좁아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블로그를 시작했습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으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애드센스 승인은 두 번 거절됐고, 방문자와 검색수도 원하는 속도로 오르지 않았습니다. 노력은 하는데 결과는 바로 보이지 않으니, 어느새 블로그도 하나의 시험처럼 느껴졌습니다. 이걸 잘해야 내가 다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고, 승인을 받아야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것 같았습니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는 같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뭔가라도 해야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고.

 

그런데 이 지점에서 구분해야 할 게 있습니다. 일을 못 하는 상태와 내가 무가치한 사람이라는 판단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상실의 시기에는 이 둘이 쉽게 붙어버립니다. 일을 잃으면 나를 잃은 것처럼 느껴지고, 수입이 줄면 내 가치가 줄어든 것처럼 느껴집니다.

 

내가 무가치해서 일이 멈춘 게 아닙니다. 상황이 바뀌었고, 몸이 다쳤고, 이전 방식으로 살아가기 어려워진 것뿐입니다. 블로그 성과가 늦게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색과 색인과 광고 승인은 노력한 만큼 즉시 결과가 나오는 영역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문장이 필요했습니다.

 

무가치함은 사실이 아니라, 상실의 시기에 생기는 해석이다.

 

지금 느끼는 상실감과 불안은 진짜입니다. 하지만 그 감정이 말하는 결론까지 전부 사실인 건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이건 지금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오래전부터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려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도,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랬습니다.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고,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그 방식은 나를 성실하게 만들었고,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준 규칙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지금은 이 규칙이 나를 지키는 동시에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몸이 아파도, 성과가 없어도 계속 증명해야 한다고 느끼게 만드니까요.

 

그런데 마음에 오래 남은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무언가를 해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쓸모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다시 해보려고 애쓰고 있었던 거라고.

 

처음 이 문장을 마주했을 때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지금까지 믿어온 것과 정반대였으니까요. 하지만 곱씹을수록 이쪽이 더 맞는 말 같았습니다.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계속 무언가를 붙잡고 있었던 거라고.

 

이렇게 보면 같은 행동도 의미가 달라집니다. 청소를 하는 이유는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을 돌보기 위해서입니다. 글을 쓰는 이유도 성공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과 기준을 정리하기 위해서고요. SecondLife Lab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증명하는 무대가 아니라, 상실 이후에도 생각하고 정리하며 다시 쌓아갈 수 있다는 증거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뭔가를 해내야 쓸모 있다고, 성과가 나와야 안심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려 합니다. 성과가 없어도, 이렇게 하루하루를 놓지 않고 붙잡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회복의 흔적이라고요. 쉬는 것도 포기가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앞으로도 흔들릴 겁니다. 블로그 성과가 늦게 나올 수도 있고, 몸이 천천히 회복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때마다 한 가지는 구분하려 합니다. 성과가 늦은 것과 내가 무가치한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것을요.

 

나는 지금까지 쓸모를 증명하며 버텨왔습니다. 앞으로는 나를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살아가 보려고 합니다.

 

무가치함은 사실이 아니라, 상실의 시기에 생기는 해석이었습니다.